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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필스리입니다.

오늘 저가 소개 드릴 선수는 최근 축구계의 최고의 신성 현재는 도르트문트로 이적한 엘링 홀란드입니다.

 

 

엘링 브라우트 홀란

 

(Erling Braut Håland)

 

출생 : 2000년 7월 21일

 

출신 : 잉글랜드 리즈

 

신체 : 194cm

 

포지션 : 스트라이커

 

 

홀란드는 노르웨이 축구 클럽인 브뤼네 FK에서 유소년으로 입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홀란드는 2군에서 14경기 18골이라는 엄청난 골 결정력을 보여주며 월반을 하며 15살에 데뷔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그는 몰데로 이적을 하게 되며 노르웨이 컵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르게 되는데 데뷔전 데뷔골을 기록하며 팀을 3-2 승리로 이끌게 됩니다.

 

홀란드는 당시 리그 무패 기록중인 상대와의 경기에서 혼자 4골을 기록하며 엄청난 득점포를 쐈습니다. 그는 11분2초 만에 헤트트릭을 기록하였고 4골을 기록하는데 17분4초가 걸렸습니다. 그날 경기에는 공교롭게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스카우터가 관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몰데의 감독은 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인 올레 군나르 솔샤르 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많은 클럽에서 그에게 이적을 제의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즌을 30경기 16골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하며 그는 레드불 잘츠부르크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잘츠부르크로 이적한 홀란드는 5년 계약을 체결하고 7월, 8월, 9월 연속 헤트트릭을 달성하며 7경기 11골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홀란드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데뷔 첫 3경기에 무려 6골을 넣은 최초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의 골을 넣는 능력은 엄청나다는게 전세계가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2020년 겨울 홀란드는 많은 클럽의 경쟁에서 브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을 하며 분데스리가로 향했습니다. 그는 리그 데뷔전에 교체로 출전하여 헤트트릭을 기록하며 클럽 2번째로 데뷔전 헤트트릭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2월 18일에 파리생제르망과의 챔피언스 리그에서 2골을 기록하며 승리를 이끌며 그는 7경기 출전해서 10골을 넣는 엄청난 골 넣는 능력을 과시했습니다. 아직 2000년생인 그의 성장이 어디까지 성장할지 무섭습니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초신성 엘링 홀란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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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필스리입니다.

오늘 저가 여러분들께 알려드릴 축구감독은 리버풀을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명장 위르겐 클롭 감독입니다. 지난 6월 2일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승리를 하여 트로피를 들어올린 위르겐 클롭 감독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위르겐 클롭

 

(Jürgen Klopp)

 

출생 : 1967년 6월 16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신장 : 193cm

 

직업 : 2001~2008 마인츠05

2008~2015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15~ 리버풀

 

 

 

위르겐 클롭 감독의 처음으로 감독을 맡은 팀은 당시 독일 분데스리가 2부리그에 있던 마인츠05를 맡았습니다.

팀을 맡았던 2001년 위르겐 클롭은 마인츠 팀이 선호하는 전방 압박 전술을 펼치면서 리그를 4위로 마무리 하였지만 가까스로 승격을 놓쳤습니다. 2002-2003년 시즌에도 리그 4위를 차지하고 마지막 날에 골득실로 인해 승격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2시즌 동안 승격을 하지못해서 엄청 실망을 하고 3번째 시즌인 2003-2004 시즌에 마인츠를 3위로 이끌며 마인츠05 구단 역사상 최초로 분데스리가로 승격을 시킵니다.

 

 

 

당시 분데스리가에 승격한 마인츠는 리그에서 가장 적은 예산과 가장 작은 경기장을 가졌지만 04-05시즌에 마인츠는 11위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05-06 시즌에도 11위를 기록하며 UEFA컵 출전 자격을 따냈지만 1라운드에서 시즌 챔피언 세비야에게 패배하였습니다. 그렇게 06-07시즌 마인츠는 강등을 맞게 되었지만 클롭은 구단과의 의리를 지키며 잔류를 선택 하였습니다. 하지만 승격에 실패하게 되면서 07-08시즌 말에 마인츠에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2008년 위르겐 클롭은 분데스리가 전통 강호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취임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극심한 부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분데스리가 중위권에 랭크 되어있던 도르트문트는 40살에 불과하는 위르겐 클롭에게 러브콜을 날렸습니다. 클롭은 취임과 동시에 팀 리빌딩을 하며 알짜영입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첫번째 시즌 위르겐 클롭이 이끄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독일의 명실상부 챔피언인 바이에른 뷘헨을 꺽고 독일 슈퍼컵을 우승을 하며 첫번째 트로피를 들어 올립니다. 그리고 08-09시즌에 클럽을 6위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10-11시즌 클롭의 도르트문트는 리그 첫 우승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11-12시즌 리그 우승 타이틀을 방어하고 포칼컵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꺾으며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구단 역사상 최초로 국내 더블을 성사시켰습니다. 그리고 12-13시즌 클롭은 UEFA 결승전에서 라이벌 바이에른 뮌헨에게 패하며 준우승을 하게 된다 그렇게 13-14시즌 이렇다할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고 도르트문트를 재건하고 지휘봉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렇게 도르트문트를 꿀벌 군단으로 다시 명성을 끌어 올리고 자신의 선수 구성 능력과 자신만의 전술이 되어버린 게겐프레싱을 바탕으로 분데스리가 2회 우승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DFB 포칼 우승 등의 화려한 업적을 바탕으로 그는 명장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명가 재건을 성공한 클롭은 리버풀이라는 우울한 암흑기를 겪고 있는 팀의 감독을 제안 받고 리버풀의 새로운 감독으로 자리를 잡게되었습니다. 부임 첫 시즌에는 리그 8위의 성적을 이루었지만 다음 시즌 16/17 , 17/18 시즌에 연속으로 리그 4위를 하며 챔피언스 리그 티켓을 따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시즌 18/19시즌에는 구단 역대 최다 승점 97점으로 리그를 마무리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펩의 맨체스터 시티에게 밀리게 되면서 리그 우승은 좌절하게 되었습니다. 클롭의 리버풀은 리그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였지만 유럽 대항전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15/16시즌에는 UEFA 유로파 리그에서 결승을 올라가며 팬들을 흥분 시켰고 17/18시즌에는 오랜만에 챔피언스 리그를 따낸것도 모잘라 결승까지 오르는 엄청난 행보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18/19시즌에는 16년 만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기록하였습니다.

현재 클롭의 리버풀은 다른 팀들이 만나기 두려워하는 팀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리그 무패를 진행중이며 암흑기에 있던 리버풀을 이렇게 전 세계의 클럽들이 두려워 하는 팀을 만든 대단한 감독이고 클롭이 있는 리버풀은 계속 역사를 써내려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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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필스리입니다.

세계 축구선수들의 연봉 순위 TOP10 4위에서 1위입니다.

 

 

4위 앙투안 그리즈만

 

해외 축구선수 연봉 4위 입니다.

스페인 라리가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앙투안 그리즈만은 현재 440억원의 연봉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여름 이적시장에 팀을 옮기겠다고 말을 했던 앙투안 그리즈만의 다음 행선지가 어디로 될지 많이

기대가 됩니다. 

 

3위 네이마르

 

해외 축구선수 연봉 3위 입니다.

프랑스 리그앙에 파리 생제르망 FC에 네이마르 입니다. 915억원을 받으며 경기를 뛰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강한 견제와 부상으로 인해 연봉에 달하는 실력을 못보여주고 있지만 최근 바르셀로나의 메시가

영입해달라고 구단측에 의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해외 축구선수 연봉 2위 입니다.

레알마드리드에서 전설적인 존재에서 유벤투스로 옮기며 3대 리그를 제패를 하고 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입니다.

현재 그는 1130억원의 연봉을 받고 있으며 그의 엄청난 스타성으로 인해 침체기였던 세리에 A가 다시 일어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엄청난 팬을 보유하고 있는 호날두가 해외 축구선수 연봉 2위 입니다.

 

 

1위 리오넬 메시

 

대망의 해외 축구선수 연봉 랭킹 1위는 바르셀로나의 전설 정신적 지주인 리오넬 메시입니다.

현재 메날두 시대의 막바지에 접어든 것 같지만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8-19시즌 트레블을 목표로 한 바르셀로나가 챔스 탈락과 국왕컵 준우승으로 인해 리그컵 우승만 한 현 시점에서 메시는 팀의 방출 목록을 말하며 팀에 다시 한번 트레블을 하기위해 노력하는 선수입니다.

 

 

 

해외 축구선수 연봉 순위 10위에서 1위까지 알아 보았습니다. 연봉이 생각도 할 수 없을만큼 천문학적인 금액이라 어느정도인지 가늠이 안갈정도이네요....

오늘도 저의 글을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필스리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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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필스리입니다.

오늘 저가 여러분들께 알려드릴 내용은요. 세계 축구선수들의 연봉 순위 TOP 10을 알아보겠습니다.

 

 

10위 루이스 수아레즈

해외 축구선수 연봉 10위 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르셀로나 소속인 그는 현재 280억원에 달하는 연봉을 받고있습니다.

과거에 악동 중의 악동으로 상대 선수를 깨물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아내의 울타리 속에서

현재 바르셀로나의 전설적인 선수가 되어가고 있는 루이스 수아레즈 입니다.

 

 

9위 에세키엘 라베찌

해외 축구선수 연봉 9위 입니다.

현재 중국 슈퍼리그 허베이 화샤 싱푸에서 뛰고 있는 에세키엘 라베찌입니다.

그는 현재 283억원의 연봉을 받고 중국 슈퍼리그에서 경기를 뛰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파리생제르망 FC와 나폴리에서 뛰었던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출신인 에세키엘 라베찌는 전성기 시절에는

디에고 마라도나의 재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굉장한 활약을 펼친 선수입니다.

 

 

8위 필리페 쿠티뉴

해외 축구선수 연봉 8위 입니다.

현재 스페인 라리가 바르셀로나에서 뛰고 있는 필리페 쿠티뉴입니다.

그는 현재 300억에 달하는 연봉을 받고 있습니다. 과거 리버풀 시절에 보여주었던 활약을 이적 후

바르셀로나에서는 그만한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

최근에는 리오넬 메시가 구단 측에 방출해 달라고 말했던 선수중에 한명이 된 선수입니다.

 

 

7위 알렉시스 산체스

해외 축구선수 연봉 7위 입니다.

7위는 알렉시스 산체스 입니다. 그는 현재 307억원에 해당하는 연봉을 받고 있지만 현재는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계륵과 같은 존재가 되버렸습니다. 과거 바르셀로나 시절에는 메없산왕이라는 '메시가 없으면 산체스가 왕'이라는 단어가 있었을 정도로 엄청난 활약을 보였던 선수였는데 현재는 77ㅓ억 이라는 별명이 생겨날 정도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입니다.

 

 

6위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해외 축구선수 연봉 6위 입니다.

과거 바르셀로나의 레전드였던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입니다. 현재는 일본 J리그의 비셀 고베에서 선수생활 황혼기에 들어간 그는 현재 330억에 달하는 연봉을 받고 있습니다.

축구를 부업으로 즐긴다는 소문이 돌정도로 큰 와인회사를 갖고 있는데도 연봉을 330억이나 받는다니...

 

 

5위 가레스 베일

해외 축구선수 연봉 5위 입니다.

현재 세계적인 명문 구단인 레알마드리드에서 뛰고 있는 가레스 베일입니다.

그는 현재 402억원이라는 연봉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잦은 부상과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팀의 골칫거리가

되어버렸습니다. 2017 챔스 결승전 엄청난 바이시클킥으로 활약을 했던 그가 그립습니다.

 

4위 부터 1위는 다음 글에서 소개 시켜드리겠습니다.

오늘도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필스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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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필스리입니다.

오늘 저가 알려드릴 이야기는 최근 축구 리그 하면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 스페인의 라리가가 가장 먼저 생각 나실겁니다. 하지만 과거 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까지에는 가장 강했던 리그는 지금 호날두가 있는 이탈리아 세리에A가 가장 강했습니다. 그 당시 가장 강했던 7팀을 세리에A 7공주라고 부르는데 오늘은 그 팀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유벤투스

 

7공주의 첫번째 팀은 현재에도 강팀의 면모를 지키고 있는 유벤투스입니다. 최근에는 강한 수비력과 밸런스있는 공격력으로 강한 팀이지만 당시에는 최강의 공격팀이였습니다.

투톱으로는 필리포 인자기와 델피에로가 골문을 호시탐탐 노렸고

투톱 아래에는 프랑스의 전설 지네딘 지단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자리를 잡고있었습니다.

그리고 중앙에는 녹내장 수술 후 고글을 착용했던 에드가 다비즈와 잔루카 잠브로타가 맡았습니다.

그리고 감독은 현재도 활동 중인 카를로스 안첼로티 감독이였습니다.

 

2. AC 밀란

 

두번째 팀은 AC 밀란입니다. 최근에는 구단주 변경과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팀이지만 당시에는 공격과 수비의 밸런스가 좋았던 팀이였습니다.

투톱으로 독일의 올리버 비어호프와 안드리 세브첸코가 버티고 있었고

중원에는 세르징요와 이탈리아의 싸움소 젠나루 가투소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수비에는 파울로 말디니가 최종수비를 맡고 있었습니다.

 

3. AS 로마

 

세번째 팀은 AS 로마입니다. 최근 원클럽 맨인 프란체스코 토티가 은퇴를 했던 클럽입니다.

당시에는 로마에서 교황 다음으로 위대하다고 하는 프란체스코 토티의 전성기 시절이였습니다.

그리고 브라질 국가대표팀 최다 출전자인 카푸가 있었습니다.

 

4. 인터밀란

 

네번째 팀으로는 최근 콘테감독과 디에고 고딘, 라키티치를 영입을 하려고 하며 리빌딩을 하고 있는

인터밀란입니다.

과거에는 막강한 공격을 보여주었는데 투톱으로 브라질의 전설 호나우두와 이탈리아의 호나우두 크리스티안 비에리가 전방을 지배하였고 중원에서는 쉐드로프와 로베르트 바지오가 있었고

수비에는 인터밀란의 전설 하비에르 사네티가 있었습니다.

 

5. 파르마 칼초

 

현재에는 명성이 많이 낮아진 파르마 칼초가 다섯번째 팀입니다. 당시에는 공격라인은

그렇게 강한 팀은 아니였지만 수비에서 매우 강한 강점을 보여주어 상대방을 질식시키는 질식수비를 펼치던

팀이였습니다.

수비에는 수비수 최초 발롱도르를 수상했던 파비오 칸나바로와 프랑스의 전설적인 수비수인 릴리앙 튀랑이 수비를 맡고 골키퍼로는 현재 전설을 써가고 있는 잔루이지 부폰이 최강의 수비를 맡고 있었습니다.

 

6. 피오렌티나

 

피오렌티나는 당시 홈에서 최강의 힘을 보여주던 팀이였습니다.

전방에는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공격을 퍼부었고 포르투갈의 전설인 마누엘 후이 코스타가 함께 맹공을 펼치던

팀이였습니다.

 

7. 라치오

 

7공주의 마지막 팀은 라치오 입니다. 라치오도 공격에서도 엄청난 화력을 퍼부었고 수비에서도 뛰어난 수비력으로 상대팀에게 빈틈을 보여주지 않는 팀이였습니다.

공격진에는 에르난 크레스포와 필리포 인자기의 동생인 시모네 인자기가 최전방을 맡았고

중원에는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과 두개의 심장 네드베드가 뒤를 받쳐줬습니다.

그리고 수비에는 알레산드로 네스타와 괴물같은 프리킥을 쐈었던 미하일로비치가 있었습니다.

 

 

7공주

 

당시 감독이였던 카를루스 안첼로티는 "다시는 저 리그에서 경쟁하고 싶지 않다. 내겐 이젠 그만큼의 무모함이 없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호나우두는 "세리에는 내 생에 최고의 리그였지만, 공격수로서는 최악의 시련을 주었다."라고 말했습니다.

파울로 말디니는 "지독한 곳" 이라고 세리에 A를 표현하였고 로베르토 바지오는 "괜찮아, 넌 여전히 최고의 선수야. 세리에 A에서 우승을 했으니까"라고 말하며 당시 세리에 A 리그를 최고로 생각했습니다.

 

오늘 저가 소개드렸던 과거의 이탈리아 리그인 세리에 A의 리즈시절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최근 호날두를 영입하며 유벤투스를 중심으로 다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필스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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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필스리입니다.

오늘 저가 여러분들께 알려드릴 축구 감독은 현재 맨체스터 시티에서 감독을 맡고 있는

펩 과르디올라입니다. 현재 축구 감독 중 최고에 손꼽히는 감독이며 라리가, 분데스리가, 프리미어리그 최다 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펩 과르디올라

(Pep Guardiola)

 

출생 : 1971년 1월 18일

 

출신 : 스페인 카탈루냐지방 바르셀로나

 

신체 : 180cm 76kg

 

포지션 : 수비형 미드필더

 

현재 : 축구 감독

 

 

 

 

펩 과르디올라의 선수시절 첫 시작은 13세에 라 마시아에 입단하여 6년간 바르셀로나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성장해 나갔습니다. 펩 과르디올라가 그렇게 바르셀로나 B 소속이 되었을 때 훈련하고 첫 주때 요한 크루이프가 훈련을 하던 펩 과르디올라를 보고는 저 선수가 누구냐고 물어보았고 오른쪽에 뛰던 펩을 어려운 포지션으로 이동 시키며 그를 테스트 해보았는데 펩은 즉시 그 포지션을 소화해내며 1990년 1군으로 이적하게 되며 바르셀로나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크루이프는 주전 선수를 쓸수 없게 되자 곧바로 펩 과르디올라를 기용하였습니다.

빠르게 성장해 나간 펩 과르디올라는 그렇게 1991-92시즌에 팀의 핵심 선수가 되며

20살에 불과하는 나이에 라리가와 유로피언 컵에서 우승한 팀의 주축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3년간 라리가를 제패하며 승승장구하던 바르셀로나는

1994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밀란에게 지면서 94-95시즌은 4위 95-96시즌은 3위에 그치며

크루이프는 떠났지만 펩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의 핵심의 선수로 발전 하였습니다.

그렇게 1997년 루이스 판할 감독이 펩 과르디올라에게 주장직을 맡기며 97-98시즌 리그우승과 컵우승으로 더블을 달성해 내며 펩 과르디올라와 바르셀로나는 세계를 제패하였습니다.

 

펩과 사비, 이니에스타, 파브레가스

 

그렇게 2001년 펩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에서의 17년간의 선수 생활을 끝내고 클럽을 떠날거라고 말하였습니다. 펩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에서 12시즌 동안 479경기를 뛰며 16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말 그대로 바르셀로나의 전설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마지막 경기였던 셀타비고와의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이어주는 계보를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이어줄것이라 믿는다며 그렇게 바르셀로나의 영웅은 떠났습니다.

 

30살에 바르셀로나를 떠나 로마로 간 펩 과르디올라는 출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전전 긍긍하다 카타르 리그에서 뛰다가 멕시코 축구클럽에서 2006년 선수 생활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그렇게 펩 과르디올라는 2007년 바르셀로나 B의 감독으로 임명되고 팀을 스페인 2부리그에 승격을 시킵니다. 그 결과 바르셀로나 회장인 조안 라포르타는 2008년 펩 과르디올라를 FC 바르셀로나의 감독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렇게 펩 과르디올라는 팀을 리빌딩 하며 많은 선수들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조율하며 시즌을 준비하였습니다.

다니엘 알베스와 세야두 케이타를 세비야에서 영입하고 마르틴 카세레스와 제라드 피케를 영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B에서 세르지오 부스케츠와 페드로등을 승격시키며 팀을 강화하며 유소년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습니다.

시즌을 시작하며 20경기 넘게 무패행진을 하며 리그 정상에 올렸습니다. 그렇게 리그 우승을 시키고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준결승에서 첼시를 힘겹게 이기고 결승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를 하며 스페인 클럽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한 최연소 감독에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펩 과르디올라는 4시즌 동안 14개의 트로피를 수집하며 그는 바르셀로나 역사상 가장 성공한 감독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최근에는 맨체스터 시티에서 리그 승점 100점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펩 과르디올라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너무 방대한 자료가 있어서 최근 자료를 생략한 점에 대해서는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

긴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필스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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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필스리입니다.

3일만에 글을 쓰게 됬네요. 제주도 여행을 갔다오게 되어서 글을 쓰지 못했네요.

아무튼 오늘의 저가 여러분께 소개시켜드릴 선수는 첼시의 역사상 최고의 레전드 선수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지안프랑코 졸라입니다.

 

 

지안프랑코 졸라

(Gianfranco Zola)

 

출생 : 1966년 7월 5일

 

출신 : 이탈리아 사르데냐 주 올리에나

 

신체 168cm

 

포지션 : 세컨드 스트라이커

 

현재 : 축구코치

 

 

지안프랑코 졸라는 1984년 만 18살때 팀 누오레스와 프로 첫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1986년 팀 토레스라는 팀에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세리에 A의 나폴리에서 1989년에 그를 영입하였고 그해 그는 데뷔를 하였습니다. 1990년 지안프랑코 졸라의 처음이자 마지막 리그 우승 타이틀인 세리에 A를 우승하고 디에고 마라도나 밑에서 지안프랑코 졸라는 점점 커나갔습니다. 그의 첫 리그 데뷔골은 아탈란타와의 경기에서 넣었습니다. 지안프랑코 졸라는 팀의 에이스이자 축구계의 레전드 마라도나와의 우정을 쌓았습니다.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 졸라를 칭하며 "마침내 나폴리가 나보다 키가 작은사람을 샀다"라고 장난을 치곤 했습니다. 두 선수는 점점 친해지며 지안프랑코 졸라는 훈련 후 마라도나가 연습을 하는것을 보며 똑같이 따라하면서 프리킥을 마라도나에게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1990년 이탈리아 슈퍼컵 우승에 큰 기여를 하고 1990-91 시즌 후반 마라도나의 약물 복용으로 나폴리는 7위에 머물었지만 졸라는 이탈리아 대표팀으로 데뷔하였습니다. 그리고 마라도나가 클럽에서 떠나며 마라도나의 10번을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마라도나가 팀을 떠나며 나폴리 경영진에게 자신을 대체할 사람을 찾을 필요 없다며 팀에는 지안프랑코 졸라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졸라는 발전해나가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1993년 졸라는 나폴리를 떠나 파르마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이적을 할 당시 팬들에게 클럽을 배신했다며 많은 욕을 먹게 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하였습니다. 당시 강팀이였던 파르마와 함께 지안프랑코 졸라는 리그의 최고 선수로 자리 매김하게 되고 세계에 명성을 날렸습니다. 이적 첫시즌에 리그 18골을 넣었고 1993년 UEFA 슈퍼컵 우승 1995년 UEFA컵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는 당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로베르트 바지오,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와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인물이였습니다. 뛰어난 활약을 하던 지안프랑코 졸라는 1996년 안첼로티 감독 체제로 바뀌고 442라는 포메이션으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포지션에서 뛰지 못하고 왼쪽 미드필더 역할을 하다가 1996년 11월 EPL 첼시로 이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첼시는 당시 루드 굴리트와 여러 선수들을 영입하고 있었는데 그중 지안프랑코 졸라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작은 체구로 상대의 수비들 사이를 비집어 들어가며 수비라인을 붕괴 시키며 플레이를 하여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완벽한 작은 선수라며 감탄을 하였습니다. 1996-97시즌 첼시의 부활의 중심에 서있었던 졸라는 리버풀 상대로 역전승을 하며 FA컵 우승을 하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시즌 말 첼시 선수 중 처음으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7-98시즌 첼시가 리그 컵, 위너스 컵, 슈퍼 컵 3개의 트로피를 올리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지안프랑코 졸라는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마라도나에게 배운 프리킥으로 골을 넣으며 종종 프리킥 골을 보여주며 강세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팀의 배테랑이 되며 첼시에서의 마지막 시즌에서 16골을 넣으며 챔피언스리그 출전자격을 땄습니다. 그리고 클럽의 올해의 선수를 받으며 그는 첼시에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고향 클럽인 칼리아리로 돌아가 칼리아리를 세리에 A로 올리며 노익장을 과시하며 다음시즌 칼리아리를 잔류시키며 축구선수 인생 마지막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현재는 마우리치오 사리 감독이 맡고 있는 첼시 FC의 수석코치를 맡고 있으며 자신의 선수시절때 처럼 첼시에 모든걸 헌신하겠다며 첼시의 레전드임을 다시 한번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소개시켜드린 주인공은 지안프랑코 졸라 였습니다. 졸라라는 이름으로 해설진들도 애를 먹었다는 졸라 이름과는 달리 소박하며 성실한 성품을 지닌 그는 멋진 선수임은 확실한것 같습니다.

긴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필스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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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필스리입니다.

 

오늘 저가 여러분들께 알려드릴 내용은 축구를 보시다 보면 등번호를 많이 보실텐데 등번호를 보고 그 팀의 어떤선수인지 확인이 가능할 정도로 축구를 보시는 분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선수를 알아보는 수단으로도 이용됩니다. 하지만 그 등번호마다 숨겨진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궁금증을 풀어드릴려고 축구 등번호 의미에 대해서 가져왔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잔루이지 부폰

먼저 등번호 1번은 팀의 골문을 지키는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등번호 입니다. 등번호 1번은 FIFA 규정에도 키퍼만 가질 수 있는 등번호라고 정해져 있을 정도로 중요한 등번호라고 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골키퍼라고 등번호가 1번이라는 법은 없습니다.

 

티보 쿠르트와

 

예를 들어 현재 레알마드리드에서 뛰고있는 티보 쿠르트와가 있습니다. 쿠르트와는 13번의 등번호를 사용하는데 이는 과거 AT마드리드에서 데 헤아에게 밀려 13번을 달고 있었지만 13번을 다고 경기에 임해서 좋은 성적을 펼쳐서 자신에게 의미있는 번호로 바뀌었습니다. 현재는 25번의 등번호를 임시로 달고있습니다.

 

카일 워커
패트릭스 에브라

등번호 2번은 주로 오른쪽 측면 수비수가 주로 등번호를 답니다. 하지만 골키퍼 앞에서 골문을 막는 역할인 센터백들도 가끔 2번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3번은 왼쪽 측면 수비수가 많이 달고 있는 번호입니다. 3번 또한 센터백들도 자주 사용하는 번호이기도 합니다.

 

이반 라키티치

4번을 사용하는 선수들은 원래는 주로 수비적인 스타일의 센터백들이 많이 사용했던 번호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공격과 수비 모든 방면에서 훌륭한 중앙 미드필더에게 많이 보이는 번호입니다.

예를 들어 바르셀로나의 이반 라키티치 과거의 아스날 파브레가스 스완지에서의 기성용 등이 이 번호를 사용하였습니다.

 

이니에스타와 사비

먼저 6번은 11명이 뛰는 축구에서의 중앙에 존재하는 숫자이므로 팀의 리더 즉 주장이나 중앙미드필더, 중앙수비수 들이 많이 답니다. 리더쉽이 그만큼 뛰어나야하고 멘탈이나 팀의 분위기를 잘 다스려야 달 수 있는 번호입니다.

그리고 8번입니다. 8번은 공격적인 중앙 미드필더들이 주로 달고 뛰는 번호입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7번은 그 클럽에서의 에이스들이 많이 다는 번호입니다.

7번은 그 팀 내에서 스타성과 출중한 실력을 겸비한 선수들이 주로 다는 번호입니다.

가장 유명한 7번 라인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7번 라인입니다. 조지베스트, 에릭 칸토나, 데이비드 베컴, 호날두 등 7번 라인을 이어왔지만 현재는 과거처럼 그렇게 강한 면모를 못보여주고 있긴합니다.

 

페르난도 토레스

 

9번이라는 번호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팀의 마무리를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최전방 공격수들이 많이 사용하는 등번호입니다. 팀에서 듬직하게 득점력을 폭발시키며 팀을 승리로 이끄는 선수들이 주로 번호를 달고 뛰는 것 같습니다.

유명한 선수로는 과거 리버풀에서 금빛 장발의 9번 토레스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나는 것 같습니다. 폭발적인 스피드와 마무리 실력까지 완벽했던 토레스가 다시 보고싶습니다.

 

에당 아자르

10번은 7번과 비슷한 의미인 팀의 핵심선수에게 부여해주거나 크랙형 선수에게 주로 부여되는 등번호입니다.

크랙이라는 뜻은 축구에서 경기의 흐름을 개인의 기량으로 뒤집을 수 있는 선수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스페인어로 크랙은 코카인을 정제한 마약을 뜻하며 빼어난 준마라는 뜻도 있다고 합니다.

 

가레스 베일

마지막으로 알려드릴 번호는 11번입니다. 팀의 가장 빠른 속력을 자랑하는 선수에게 부여하는 번호로

주로 윙어들이 많이 달고 있는 번호입니다. 대표적인 선수로는 사진에 존재하는 과거 토트넘에서 뛰고 현재는 레알마드리드의 가레스 베일입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그 당시 최고의 오른쪽 수비수였던 마이콘을 스피드와 드리블로 뚫었던 장면이 최고였습니다.

 

이상 오늘 저가 알려드린 내용은 축구 등번호 의미 입니다. 축구를 보시면서 등번호에 담긴 숨은 의미도 알고계신다면 더 재밌게 축구를 보실 수 있을겁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필스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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